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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 [어제는 봄] 기억과 망각의 교차점 '나'(정수진)를 외부에서 바라볼 때 그녀는 권태롭지만 평화로워 보인다. 남편의 끔찍한 가정폭력이나 엄청난 경제적 부채도 없이 그녀는 안정적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은 산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침체에 빠져있다. 수진에게는 목소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언어는 10년간 쓰고 있는 소설이며, 트라우마이다. 소설이 아닌 것들은 수진에게 삶이 될 수 없다. 수진은 자신의 소설을 '아무도 읽지 않을' 소설이라 칭하며, 그럼에도 언젠가 읽힐 수도 있다는 '고문'을 당하면서 쓴다. 그런 고통 속에서 수진은 자신을 작가님이라 불러주는 유일한 사람, 이선우를 만난다. ​ "이선우 경사는 마무리 인사로 이런 말을 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작가님.' 어떤 날은 이렇게 보냈다. '그럼 오늘.. 2020. 4. 29.
한강 -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우리는 너무나 자주 세계가 고통과 아름다움이 섞여있다는 사실을 잊고 싶어 한다. 고통에게서 고개를 돌리려 하지만, 곳곳마다 섞여 있어 우리는 갈 길을 잃고 만다. 때때로 고통의 감각이 온몸을 뒤덮어 불길 속으로 몸을 던지고 싶을 때, 숨을 쉬는 것이 버거워질 때 우리는 세계의 부조리함에 당황하며, 죽음을 가까이하고자 한다. 가까워진 죽음 속에서 우리는 묻는다.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왜 우리는 고통을 갓난아기처럼 품에 안고 나아가야 하는가. 시인의 말처럼 세상은 환영이고 산다는 것은 꿈꾸는 것인데, 왜 이 환영과 꿈속에서 피가 솟구치고 눈물이 흐르는가. 왜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야 하는가. 왜 죽음은 도착지가 될 수 없는 가. 산다는 것은 단순히 사는 것이 아니다. 삶은 매 순간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 2020. 4. 29.
한강 - 세계와 인간성 한강 작품들은 [채식주의자] 와 [소년이 온다]를 양축으로 에코페미니즘과 현상학적 신체와 관련된 것으로 연구되어 왔다. 이러한 연구들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작품들의 유기적인 연관성을 봤을 때, 이것은 비약은 아닐지언정, 한강의 글을 조각하는 것이라는 오해를 피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한강은 작품 초기부터 끊임없이, 그러나 조용히 인간성에 관해 질문해 왔다. 인터뷰에서(http://ch.yes24.com/article/view/30861) 볼 수 있듯 한강은 자신의 작품들을 이념이 아닌 질문으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 한강은 끊임없이 질문해 왔고, 하이데거의 말처럼 질문 자체로 한강은 끊임없이 변화해 나가면서 답을 찾아나가고 있다. 한강은 삶과 인간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내릴 수 없을.. 2020.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