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여자친구> (레진코믹스, 청건)의 주인공 허영이는 소녀 만화의 일반적인 여고생 캐릭터이다. 잘생긴 남자 선배 백빛나를 한번만이라도 만나기 위해 고등학교까지 정한 만화틱한 설정의 여고생이다. 그렇게 지망한 고등학교에 처음 등교하는 날 백빛나의 이상형에 자신이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후 바로 허영이는 백빛나의 이상형에 완벽히 부합하는 최한나를 만난다. 설상가상으로 백빛나는 최한나에게 관심까지 보인다. 그 장면을 옆에서 관찰한 허영이는 최한나에게 잘생기지 않았냐며 호들갑을 떨어댄다. 최한나는 이에 잠깐 생각한 후 이렇게 대답한다. "솔직히 좀 놀랐어. 고등학교씩이나 와서도 이상한 사람이나 봐야되고, 왜 어딜가나 상대는 관심도 없는데 호들갑인 놈들이 있는지 모르겠네 띠껍게." ( 사실 이는 백빛나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지만 허영이는 본인에게 한 말로 오해한다.)
<여자친구>는 외부적으로 보편적인 소녀만화의 형태를 띠며 인물 관계도도 마찬가지로 독자들이 예측하기 쉽게 그려진다. 그러나 독자들의 그 예측은 단 한개도 들어맞지 않는다. 먼저 여자친구라는 제목을 보자. 제목에서부터 우리는 누구의 (정확히는 남자의) 여자친구라고 생각하며, 학원 (이성애) 연애물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제목에 어떠한 남성도 없는데 이미 머리속으로 잘생기고 훤칠한 소년을 상상하는 것이다. 웹툰이라는 매체가 진보적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대부분의 인기있는 연애물 웹툰은 잘생긴 남성과의 연애를 전제한다. (네이버 웹툰 : <간 떨어지는 동거> , <낮에 뜨는 달> , <치즈 인더 트랩> 등등) 그나마 진보적인 매체이기 때문에 남성은 적극적이기도, 소극적이기도, 보호의 대상이기도, 보호의 주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웹툰 <여자친구>는 잘생긴 남성, 연애 모두 등장시키지만 그것은 개별적으로 이루어진다. 최한나는 남성을 좋아하지 않으며, 엄마와 연애한다. 허영이는 남성(녹색뿔테남)과 연애를 시작하려 하지만 최한나라는 여자친구의 말 때문에 연애를 포기한다. 녹색뿔테남은 둘 사이를 공고하게 하는 역할에 그친다.
백빛나 또한 마찬가지다. 영화 촬영을 마치고 백빛나는 최한나에게 고백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자살해! 이다. 이것이 학원 연애물에서 예측 가능한 전개인가? 백빛나는 최한나에게는 허영이와의 친밀함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뿐이며, 최한나의 질투를 유발하는 캐릭터일뿐 서사를 이끌어가는 캐릭턱가 아니다. 이렇듯 이 웹툰에서 남성은 어떠한 서사의 축도 되지 못한다. <여자친구>의 제목이 지칭하는 것은 여자애들의 여자친구를 지칭하는 말이며, 연대의식과 같은 것들 뿐만 아니라 사랑의 감정까지 가시화하는 여자친구를 뜻하는 말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사회적으로 수용되지 않는다. 여자들끼리의 사랑은 불가능하며, 우정은 가볍고 남성이 개입되면 쉽게 깨지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최한나는 첫키스의 상대를 묻는 질문에 엄마라고 답하지만 그 누구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와 '딸'의 키스는 웹툰에서 레즈비언 커플이 허영이에게 아니 정확히는 독자에게 말하는 "아주 눈 앞에서 키스를 해줘도 아무 생각이 없는데? 해봐야 믿지도 않는"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친구>에서 가장 에로틱하고 성적 긴장을 최고로 고조될 때는 최한나와 그녀의 엄마의 애정행각이 그려질 때이다. 그럼에도 독자들은 엄마와 최한나의 관계를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눈 앞에서 키스를 했고 해도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다. 최한나와 그녀의 엄마는 아빠가 죽고 나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방해물이 빠져야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것이다. 최한나의 삶에서 있어서 남성은 방해물이며 성장 과정에서 어떠한 과정에서도 남성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최한나의 상상에서 계속 남성이 죽기를 바라는 것은 단순한 개그코드로만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여기에 있다. 남성과 결합되야 시민으로 인정받는 이성애 중심사회에서 최한나는 여러 가지의 돌파구를 찾아보지만 절대로 남성과의 결합은 추구하지 않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남성과 결합한 여성은 법적으로는 보호받지만 사적으로는 소유물이 된다.
이혜지와 김소영의 관계는 자극적이다. 폭력적인 부잣집 딸 이혜지와 조용하지만 까칠한 김소영의 관계는 연애관계를 표상한다. 친구의 데뷔가 신경쓰인다고 이혜지가 남자를 만나는 것에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은 김소영의 캐릭터 설정 상 불가능하다. 또한 김소영과 이혜지의 스킨쉽은 우정의 종류가 아니다. 그들은 섭과 돔의 관계처럼 보이며 김소영이 이혜지에게 화를 내면서 무엇인가를 종용하자 이혜지는 '나에게 명령하는 것 같잖아' 라며 싸늘한 표정을 짓는다. 레즈비언의 섭과 돔 관계라고 해석하는 것은 본인의 비약이라 해도 둘이 연인 관계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혜지가 사귄 남자들은 <여자친구>에서 등장하는 모든 남자들 처럼 둘의 관계를 정립하게 하는 매개로만 등장한다. 사실 이혜지와 김소영의 에피소드는 작가가 기본 설정만 유지한 채 레즈비언들을 위한 서비스 에피소드라고 생각한다.
이제 결론을 내려보자 <여자친구>에서 지칭하는 것은 ~의 여자친구가 아니다. 여자친구들이다. 여자친구들의 우정과 사랑은 가벼운 것으로 간주되며, 남성이 개입되면 깨져버릴 것으로 사고하는 것을 폐기할 것을 요청한다. <여자친구>의 우정과 사랑서 남성은 방해물이 맞지만 그것을 깰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여자친구>에서 남성은 무력하며 그저 여자친구들의 관계 정립 과정 중 소멸되면서 도움을 줄 뿐이다. (핵심은 소멸되면서이다. 남성은 없어질 때만 도움이 된다.) 본인이 스스로 말하듯 한나에게 남자는 필요 없다. <여자친구>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권장받는 모든 잠정적인 이성애 관계를 폐지하며 여자애들의 감정을 밝혀내라고 한나의 대사를 통해 반복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남자친구는 됐어 나는 여자친구가 필요하다고 왜 모르니? 왜 몰라 알아줘 알아달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