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에서 미나는 수정이다. 정확하게 하자면 수정은 미나이다. 수정은 미나이면서, 미나가 아니길 원한다. 수정은 미나를 질투하며 동경한다. 그러나 그런 미나가 박지예의 자살로 흔들리자, 수정은 불안을 느낀다. 친한 친구의 자살로 힘들어 하는 미나 때문이 아닌, 힘들어 하는 미나의 모습을 불안해 한다. 그녀는 힘들어해서는 안된다. 감정에 휘둘리는건 멍청한 사람이고, 그 사람이 내(미나)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그녀는 교정되어야 한다. 교정될 수 없다면 파괴되어야 한다.
나는 이제 더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아. 그리고 너를 죽이기로 했어. 어느 게 먼저인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내가 너를 사랑했던 것도 사실이고 너를 죽이기로 한 것도 사실이야. 그래. 웃어. 계속해서 웃어. 우는 것보다는 낫지. 나도 네가 웃으면서 죽는 모습을 보고 싶어. 울면서 죽는 건 싫어. 나도 알아. 사실 나는 희망을 가져보려고. 변화시켜보려고. 너를 내가 변화시켜보려고...... -303p
지금 너는 굉장히 슬퍼 보여. 너는 불량품이니까. - 303p
수정이 새끼 고양이를 죽이는 것은 미나를 죽이는 것의 예행연습이며, 살인에 대한 메타포이다. 고양이의 목을 조르고, 밥을 먹으라고 강요하다가도 수정은 "이러려던 게 아니야" 라고 말한다. 수정은 고양이가 밥을 먹기를 바랬다. 누군가가 목을 졸라도 수정은 그가 밥을 주면 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밥을 먹어 수정은 더 커지고, 높이 올라가 그 사람을 아래로 내려다 볼것이다. 그녀는 고양이도, 미나도 그러길 바랬다. 그러나 고양이는 그렇지 않았고, 당연하게 고양이를 죽였다. 교정되지 않는 것은 그녀에게 죽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녀는 미나를 죽이고 싶어 하지만 미나가 죽는걸 원하지는 않는다. 이 모순적인 감정은 수정이 세상을 이해한 방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논리와 이성의 해결책으로 풀 수 없다. 그것은 애매한 것이며 따라서 파악되지 않는 어떤 것이다. 그러나 미나는 자신의 곡선을 무수히 많은 직선으로 나누어 파악하고자 한다. 그렇게 파악된 곡선들은 연결되어 있지 않고 떨어져있다. 떨어져버린 선들은 연결점을 찾지 못하고 임의적으로 연결한다. 수정의 살인은 그렇게 구축된 것이다.
갑자기 수정은 자신이 더이상 미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랑이 비밀스러운 이유는 비밀만이 사랑을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미나의 비밀을 손에 넣었으니 수정은 이제 더이상 미나를 사랑할 수 없다. 수정은 이제 미나를 정리하며 또 잊는다. 이제 그녀가 미나를 순수하게 경멸할 수 있다는 의미다. -p125
수정은 미나가 그랬던 것 처럼 벽장에 들어가본다. 그러나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달리, 너무 답답하고 비좁아 금방 나오고 말아버린다. 수정은 그런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며, 미나를 더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고양이를 죽인 뒤 악몽과 환각에 시달리자, 수정은 벽장 안에 들어가고 안정을 찾는다. 고양이(미나)를 죽인 수정은 미나를 따라하자 안정을 되찾는다. 그러나 수정은 "하지만 이건 도피적이야. 벽장 속이 좋아봤자 벽장 속이지. 벽장 속에서 행복해봤자 벽장 밖에선 아무것도 아닌데. 그걸 알아야 하는데. 미나 젤리가 되고 싶었니." 라고 말한다. 수정은 벽장 밖의 세계를 가지고 있고, 미나는 벽장 안의 내면을 가지고 있다. 수정은 내면을 가지기 원하지 않으며, 그런 내면에 공감하면서도 도피라고 말한다. 이제 수정은 미나를 온전히 이해하면서도 깔볼 수 있게 되었다. 미나의 내면을 공유하면서도 그것을 외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수정은 미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 "마음을 착하게 써봐 수정아. 이제부터라도. 안 그러면 아무것도 안돼. 봐 벌써 문제가 생기잖아? 너는 착한 마음이 뭔지 모르지. 그래서 인정을 안하는 거야. 하지만 니가 인정 안한다고 있는 게 없어지는 건 아냐. 니가 인정 안해도 어쩔 수 없어. 세상은 그런 거니까. 친구가 죽으면 슬퍼하는 게 세상이야. 모두가 너처럼 서로를 물어뜯으며 살아가지는 않아. 믿기지 않겠지만. 니가 아직 어려서 모르는 것 뿐이야. 그리고 지금의 너를 부끄러워하게 되겠지. 하지만 언젠가 니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모르겠어. 너는 도대체 믿을 수 없겠지. 결국은 스스로 깨닫는 수 밖에 없어 그런 건. 그런데 자꾸 너 같은 애들이 늘어가고 너 같은 애들이 자꾸만 세상을 차갑고 딱딱하게 만들어. 그래서 자꾸만 세상의 원래 모습이 잊혀져가. 나는 그런 게 무서워. 진짜야 너무 무서워 수정아. 너는 모르겠지 이런 무서움을. 설명해준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겠어? 니가 보는 세상이 내가 보는 세상이랑 다른데. 그래 나를 죽여. 맘대로 해.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줘. 니가 지금 크게 잘못하는 거야."
- "그래 … 이제야 알겠어… 너는 정말로 악마였어. 나는 사실 아까까지만 해도 약간 혼란스러웠어. 니가 진짜 악마인가 아닌가. 아니면 어쩌지? 그저 악마의 탈을 쓰고 있는 순한 양이 아닌가?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애서. 그래서 내가. 속임수를 쓴 거야. 콩밭이나 회덮밥 얘기를 하면서 너를 혼란에 빠지게 한 거지. 그런데 너는 거기에 완전히 속아넘어간 거야! 그래 내가 정확했어! 대단해 이수정! … (중략) … 세상은 선한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 너의 눈으로 보기엔 그렇겠지. 악마에게 악은 선이고 또 선은 악이잖아. 그래. 너는 개선의 여지가 없어. 왜냐하면 참말로 악이니까. 완전한 악. 그래서 너는 죽어야 해. 내 손으로 너를 없애고야 말겠다. 처음에 나는 너랑 내가 비슷한 종류의 인간인 줄 알았어. 내가 완전히 정신이 나가 있었던 거지. 너랑 나는 완전히 달라. 너는 악이니까. 나는 선이니까. 너는 악마니까 나는 천사고. …(중략)… 너는 악마야.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믿으니까! p287~299
수정은 드디어 미나가 자신과 같지 않다는 것을 완벽하게 깨닫는다. 미나는 불량하지만, 내면의 선함과 세상에 대한 믿음이 있다. 그러나 수정에게 그것은 악한 것이다. 그러한 선함과 믿음은 위로 올라갈 수 없게 만들며, 현재의 삶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수정의 삶은 흰색과 검정색, 가해자와 피해자, 뿐이다. 그녀의 삶은 회색은 없다. 오직 흰색과 검정으로 이루어진 픽셀들의 조합으로 세상은 이루어져 있다. 그러한 태도를 가진 수정이 또 다른 자신(미나)가 픽셀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잡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거슬리는 것은 당연하다. 수정은 가해자가 되기 위해 살아간다. 절대로 남에게 무릎꿇지 않겠다는 다짐은, 수정에게 반드시 남을 무릎 꿇리겠다는 다짐과 같은 것이다. 그녀에게 평등은 없다. 무수히 나누어진 픽셀 사이에 흰색과 어두움만 있을 뿐이다.
수정은 훌륭한 P시의 시민답게 지배자에 의해 길러졌으며, 지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녀는 어제까지만 해도 가장 높았던 파도가 오늘에는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을 바라보며 맨 꼭대기로 계속해서 도망칠 것이다. 올라가는 중에 본 빛은 착란에 불과하다. 그것은 마약에 불과하며, 거기에 빠지는 순간 순식간에 파도가 자신을 잡아먹고 말 것이다.
"결국 삶은 수정을 질식시킬 것이다. 그녀는 개별적으로 질식될 것이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가장 더러운 것들이 그녀를 물들이게 될 것이다. 그녀가 가장 원하는 것을 빼앗아갈 것이다. 그녀는 그런 식으로 키워졌다. 지배자들에 의해. 그렇게, 그녀는 살아남을 것이다. 도망치는 미친 쥐들의 등에 올라타, 그녀는 살아남을 것이다. 승리할 것이다. 압사당한 채로, 그녀는 가장 높은 탑의 꼭대기에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질식된 채로."
이것이 현재 수정이 처한 사회-공간적 상황이고 거기에 예외란 없다. p88
봄을 지워버린 수정은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그녀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수정은 미나를 사랑했다. 사랑에서 경멸로 바뀌는 경계에 수정은 미나를 죽였다. 평생을 미나에 대한 결핍으로 허덕이지 않기 위해, 수정은 미나를 박제했다. 박제가 되어버린 미나는 미나의 내면이 아닌 수정의 세계로 편입되었다. 이제 미나는 온전히 수정으로 변모했으며, 수정은 위대해질 것이다.